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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eam: Nam Soohyoun, Pyun Xoser




What does it take to design and build a residence? For us, it’s a wonderful process that brews over time. For this project, architect and client came together and started with selecting the site. From then on, it took us more than 30 meetings, 14 months to design and another 10 months for the construction. We still visit the house seasonally. Architect, client and the house is growing old together.

For in the flux of life, where all our concepts are elastic, we couldn't reconcile ourselves to a rigid concept.


-Ludwig Wittgenstein



It was already an old story, but on September 11, 2001 I was at the scene of the New York catastrophe.

By avoiding colliding planes and bomb-like debris there, and looking at the collapsing World Trade Center, the immediate feeling I felt was not a desire for world peace, nor was I wondering why anyone would do this. Some of the people who evacuated into the clothing store and talked for hours, all with the same idea. 'I want to see my family ...' Everyone who was there, regardless of race or profession, was one of the very simple and intense feeling of wanting to see their family. There was no room for 'family dismantling'. After the incident I left everything and returned home to my family. It was a hard decision considering my architectural journey, but I still do not regret it.





For such a person, housing has a new meaning. It is not a place that can be a very fashionable place, or simply a place where a social unit stays according to lifestyle, but rather a place responsible for happiness and safety of its members.


After that, my intentions were contradictory as I began to design. One is the delusional desire that architecture functions as a shelter from the outside, or a backbone, that wants to protect the internal members, and another desire to make the maximum possibl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the outside as a natural demand of housing. In addition, there was the desire to increase the communication among the family simultaneously each space functioning for the occupant of the space. By these triple needs from the very beginning, the proposal is twisted and eclectic in its concept.





I also regard one single space as the fundamental form of housing. Considering housing as a single room, we can imagine the most primitive and perfect state of housing. But now, as we think of our complex lives, it exists only as a prototype model, so the question becomes how we can possibly link the spaces like a single room while allowing expansion and separation.


The building has been located in a southern direction and an inner space within the ground, an unconscious layout of the outer space, and a long east-to-west layout for parallel projection of functions. This arrangement of long axis provides the potential for natural transition space to the porch, and provides a depth that is difficult to experience in normal residential. On the first floor, where the space plays a public role, all of the spaces are constantly connected, and the flow continues to the opposite circular staircase. However, the circulation slips either vertically or horizontally for functional and spatial reasons. Through this slip and level difference, and the deliberate ' breaks ', each of the spaces has its own uniqueness, which is achieved by the relationship with the outer space assigned to each unit. Even on the second floor, which is the private sector, all doors are normally kept open using sliding doors and, if necessary, are able to be separated into rooms. Each partially severed space by sliding is once again connected to another space by visual connection, and also to the outside.

주택을 짓는다는 것.


주택을 설계한다는 것은 의뢰인과의 마음이 맞으면 정말 행복한 과정이다. 이 집을 계획하면서 같이 꿈꾸었던 수많은 안들과 감정의 공유는 아직도 생생하다. 서른 번 넘는 미팅과 14개월이 넘는 설계과정을 거치면서, 의뢰인과 우리는 같은 공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직도 계절이 변할 때마다 만나는 사이.

벌써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지만, 2001년 9월 11일에 나는 뉴욕 대참사의 현장에 있었다.


충돌하는 비행기와 거기서 폭탄처럼 떨어지는 파편을 피하고, 무너지는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보면서, 내가 느끼던 즉각적인 감정은 세계평화에 대한 갈망도 아니였고, 누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도 아니였다. 한 옷가게로 피신해서 몇 시간동안 대화를 하게 된 몇몇의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은 생각을 하며 얘기했다. ‘가족을 보고 싶다...’ 인종과 직업을 불문하고 그 곳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은 가족을 보고 싶다는 매우 단순하고도 격렬한 감정속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곳에 누군가가 말하는 ‘권력’이나, ‘가족의 해체’가 서 있을 공간은 없었다. 이 사건후 보게 된 화가 이중섭의 그림이 더더욱 애잔한 것은, 아마도 극한의 고립된 장소에서 가족을 갈망하는 감정을 경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 후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대로 가족들 곁으로 귀국하였다. 건축적 여정으로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한 결정이였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주거라는 것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인식하듯이 단순히 하나의 사회적 유닛이 머무는 장소, 혹은 라이프 스타일에 의해서 매우 패션어블한 장소가 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진정 그 구성원들의 행동과 행복, 그리고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배경으로서의 주거의 의미가 다가오게 된 것이다.


그 후, 디자인의 주체로서 처음 맡게 된 이 주택의 계획에 구체적으로 임하면서, 나의 의도들은 서로 모두 모순되었다. 하나는 건축이 외부로부터의 셀터, 아니 요쇄로 기능해 내부구성원을 지키고 싶다는 피해망상적인 욕망과, 주거의 당연한 요구로서 자연과 외부에 최대한 관계를 짓고 싶은 욕망. 또 내부적으로는 가족간의 소통과 생활의 공유를 늘리고 싶다는 욕구와 하나하나의 공간이 또한 그 공간의 점유자를 위해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여기에 건축가의 순수의지의 달성과 주거가 가져야 할 건축주에 대한 배려... 초기부터 가진 이런 이중적인 욕구들에 의해서 계획안은 비틀어져 있으며 그 개념상 절충주의적이다. 항상 ‘순수한’ 사고와 그 사고에 따른 ‘정직한’ 적용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는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새로운 과정이였다. 그러나 그 과정의 첫 단계를 마감한 지금, 적어도 주거에 있어서는 이런 생각이 꼭 틀리지는 않은 것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자신의 사고 또한 ‘완고한’ 개념속에서 조금은 삐져 나온 것 같아 다행스럽다.



또한 주택의 근원적인 형태로 하나의 방을 생각한다. 하나의 방으로 주거를 고려할 때, 우리는 주거의 가장 원형적이고 완벽한 상태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복합적인 삶을 생각할 때 이는 원형적인 모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는 어떻게 공간을 늘리고 분리하면서도 하나의 방처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건물은 향과 대지 내에서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무중심적인 배치, 병렬적인 배치를 위해서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남향으로 열려 있다. 이런 장축의 배치는 현관까지의 자연스런 전이공간의 가능성을 마련해주며, 일반주거에서 경험하기 힘든 깊이를 마련해 준다.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1층에서 모든 공간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으며, 흐름은 반대쪽 원형계단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이 동선축은 기능상, 공간상의 이유로 단차를 두며 수직적으로 미끄러져 있거나, 평면적으로 살짝 미끄러져 있다. 이런 미끄러짐과 레벨 차이, 그리고 의도적인 ‘끊음’을 통해서 각각의 공간들은 자신의 고유함을 갖게 되며, 이 고유함은 각각의 유닛에 부여된 외부 공간과의 관계에 의해서 완성된다. 사적인 영역인 2층에서도 모든 문은 미닫이문을 이용해서 평상시에는 항상 열려있으며, 필요시에는 공간적인 구분이 가능하다. 미끄러짐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단절된 각각의 공간들은 다시 시각적인 연결로 다른 공간과, 또한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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